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터게이트 사건 (문단 편집) === 시작 === [[1972년]] [[6월 17일]] 밤 늦은 시각 민주당전국위원회(DNC)[* 한국으로 치면 중앙당. 미국 정당들은 각 정치인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개방적인 구조로 중앙당이 없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모든 선거 후보자를 경선으로 선출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공천권을 행사하는 당대표는 없지만, 전국의 당원과 재정을 관리하고 선거때마다 후보경선을 진행하는 중앙당 조직은 당연히 존재한다.(원내에서 자당의 당론을 조율하는 역할은 의장 또는 원내대표가 맡는다) 2016년에도 민주당 전국위원회가 힐러리 클린턴을 대선후보로 만들기 위해서 편파적으로 경선을 관리했다는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나와서 당지도부들이 사퇴하는 등 민주당이 엉망진창이 된 상황이다.]가 입주해있던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호텔의 경비원은 괴한이 침입한 흔적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였다. 호텔에 출동한 경찰은 민주당 사무실에 [[도청(범죄)|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던 괴한 5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였다.[* 괴한 중 일부는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CIA에서 사용하는 동일 종류의 도청 장비를 소지하고 있었다. 이 문제 때문에 CIA는 사건 초기부터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체포된 범인들은 끝까지 단순 [[절도죄|절도]]임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단순 절도범에 어울리지 않는 거물급 [[변호사]]가 나타나서 이들을 변호하고, 일당 중 1명이 가지고 있던 수첩에서 [[백악관]] 보좌관인 하워드 헌트의 전화번호가 발견되면서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대통령 재선위원회를 만들어서 차기 대선을 준비중이었는데]], 하워드 헌트가 바로 재선위원회의 실무자. 게다가 경찰 수사 결과 이들은 3주전에도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했으며, 이번 침입은 고장난 도청기를 교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게 드러났다. 이게 단순절도 사건이 아니라는 의혹이 커지자, [[연방수사국|FBI]]가 직접 수사에 착수했다. FBI가 개입할 정도로 일이 커지자 닉슨과 주변 측근 인사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시작한다. 닉슨은 우선 CIA에 FBI의 사건 수사를 방해하고 최대한 은폐하라고 지시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당시 CIA 국장이 훗날 증언하기론 은폐, 특히 증인 매수 및 입 단속에 필요한 [[화폐|돈]]을 CIA 자체 자금으로 처리하라는 것이 닉슨 측의 명령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CIA 자금 이외에는 마땅히 닉슨이 남들 눈에 안 띄게 쓸 수 있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CIA의 자체 예산은 비공개였기 때문. 현재도 CIA를 "포함"한 모든 정보기관의 총 예산이 얼마쯤 들어간다는 것만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국정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예산이 비공개로 처리되어 있다.] 그러나 CIA로서도 이미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함부로 돈을 쓸 수 없었고 결국 증인 매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후보로 [[조지 맥거번]]이 선출되고 닉슨과의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되자, 워터게이트 사건은 점점 여론의 관심에서 밀려나게 된다. 게다가 괴한들이 침입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는 별다른 기밀문서도 없었기 때문에 맥거번 후보나 민주당쪽에서도 실질적인 피해는 없다면서 이 사건을 크게 부각시키지도 않았다. 사실 당시 민주당은 험프리와 맥거번의 대선후보 경선이 너무 치열했던 나머지 당이 쪼개져 있었고, 부통령 후보가 중도에 교체되는 등[* 처음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로 선출된 [[토마스 이글턴]](Thomas Eagleton)이 우울증 증세로 치료를 받았던 것이 알려지면서 사퇴하고, 그로 인해 전국위원회에서 특별 회의를 통해 [[존 F. 케네디]]의 매제인 동시에 프랑스 대사를 지낸 적 있던 [[사전트 슈라이버]](Sargent Shriver)를 새로운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참고로 이 사람의 사위가 [[아놀드 슈워제네거]].] 난장판이었다. 이때문에 일관된 선거전략을 세우지도 못했다.[* 핵심공약으로 [[기본소득제]]를 내세울 정도로 진보적이었던 맥거번 후보가 지저분한 네거티브 선거전략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깨끗한 정책선거를 원했다고... 지난번 대선이었던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휴버트 험프리]]가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네거티브만 남발하다가 결국 간발의 차로 닉슨에 패한 것 역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결국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은 선거인단 538표중 520표를 쓸어가는 압승을 거뒀다. 유권자 득표율에서도 60%를 넘어서는 대승이었다. 사실상 대통령 선거 시점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은 아무도 신경 안썼단 얘기. 언론들도 일반적인 선거보도에만 열을 올렸지,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미 신문지면 구석으로 밀려난지 오래였다. 다만 [[워싱턴 포스트]]는 이 사건을 계속 보도했는데, 별다른 여론의 반향은 없었다. 오히려 친 닉슨 성향의 언론들은 워싱턴 포스트를 [[가짜뉴스]]라며 공격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